본문 바로가기
간호학과 공부노트/간호학개론

한국 간호의 역사 - 일제 강점기의 간호

by 하비™ 2020. 5. 22.
728x90
반응형

더보기

학습목표

 

일제시대의 간호를 이해한다.

간호 발전에 미친 영향을 이해한다.

1. 간호관련제도

1) 위생행정

1895년 고종 때 중앙행정기관으로 내무부에 설치된 위생국은 1906년 일본인들의 간섭으로 경무국으로 이관되었다. 조선총독부의 보건의료행정은 경찰서에서 담당케하여 경성의경무총감부, 각 도 경무부, 각지 경찰관서에서 수준별로 경찰위생제도를 수립하였다.

당시 강압적 행정으로 독일을 통해서 일본으로 들어온 일본식 간호가 있었으며, 의사 이외의 보건의료인은 평가 절하되고 억압되는 의사 위주였다. 일제의 필요에 의한 관련 법률의 개악이 있었고,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와 여성 교육과 사회진출의 기회가 제한되는 등으로 인해 자율적인 간호전문직 발전이 저해되었다. 또 선교계 병원의 설립을 억압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간호교육의 교육과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법적으로 면허가 제도화되었으며 건강진단이나 예방접종 등과 같은 공중보건 간호활동이 활발하였다. 또 본격적으로 조선간호부회나 조선간호부협회 등의 간호단체를 설립해 전문직 단체 활동을 시작하였고, 보건의료제도와 의료기관의 확대로 간호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2) 간호면허제도

① 간호면허제도

1914년 산파규칙과 간호규칙이 발표되면서 간호에 대한 법률이 최초로 제정되었고, 간호사와 조산사의 면허제도가 실시되었다.

간호사가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조건18세 이상의 여성이 도별 시행하는 시험(자격검정시험 제도)에 합격한 자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도 조선총독이 정하는 시험(교육경력 등한시)에 한 사람이나 조선총독부에 인정하는 간호학교 졸업자는 무시험으로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는 간호사와 조산사의 질을 저하시켰다.

조산사 면허제도는 만 20세 이상 중 조산학교를 졸업하거나 면허 시험에 합격하면 취득할 수 있었다. 

② 간호면허제도의 개정

1922년 개정된 간호부 규칙에 간호사 면허 자격 강화 및 간호업무에 관한 규정이 추가되었다.

간호사 교육기관의 입학자격을 소학교 졸업 후 2년 이상의 중등 교육을 이수한 자로 상향 조정되었으며, 응급상황에서 주치의의 지시가 없어도 치료기계 및 의약품 제공 및 지시가 가능하도록 개정되면서 응급 상황 중 간호사에게 자율적 결정권을 부여하여 관행적 간호사의 의사업무 대행을 방지하였다.

무면허자의 취업 및 유사 영업을 불허하고 간호사의 개업 및 폐업 등록에 대해 엄격히 규정하였다. 자격시험과목 세분화 및 실기시험을 삭제하고 조선의 간호사 면허가 일본, 대만, 다른 식민지에서도 통용되었다.

**면허시험 응시 자격 : 정규간호학교에서 1년 이상 교육과정 이수자

1942년에 한번 더 개정되었는데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간호사와 조산사의 수요가 증가하여서 간호인력 공급을 위해 제도적으로 법을 개정하였다. 간호사의 자격 최저연령을 18세에서 1842년에 17세로, 1944년에 16세로 낮추었고, 조산사의 자격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낮추었다.

 

2. 간호교육

1) 관립 간호교육

타 직업에 비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여성이 지원하였다. 1910년대의 관립 간호교육기관은 중앙에 조선총독부의원을, 지방의 각 도 자혜의원의 간호부를 통해 간호교육이 실시되었다.

1911년 공포된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 규칙'을 통하여 조선총독부의원에서의 간호교육이 구체화되었다. 입학조건은 17세 이상 25세 이하의 신체 건전하고 품행 단정한 조선인 여성이었다. 보통학교 4년 수료자는 조산부과 무시험 입학이 가능하고 보통학교 3년 수료자는 간호부과에 무시험 입학이 가능했다. 수업료는 무료였으며, 수업연한으로는 간호부과는 1년 6개월, 조산부과는 2년이다.

1912년에 한 번 더 개정되었다. 입학조건은 한국인과 일본인, 남자와 여자가 모두 가능하였으며 간호부과에는 보통학교 4년 졸업자가, 간호부과 졸업자는 조산부과에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수업연한은 1년이었다.

2) 선교계 간호교육

1915년 '개정 사립학교 규칙'을 통해 기독교계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1916년 '조선총독부의원 및 도 자혜의원 조산부 간호부 양성 규정'을 반포하여 전국의 관립간호교육 기준을 통일하였다.

1920년대 간호사 인력부족완하를 위해 사립간호교육기관에 인가를 내었으며, 인가된 사립간호학교 졸업생은 무시험면허획득이 가능하였다. 기본간호에 대한 지식습득과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무 실습을 통해 수업이 진행되었고, 세브라스 연합 의학전문학교는 입학 후 6개월이 되면 가관식과 병원실습을 행하였다. 태화여자관에서는 보건간호를 실습하였다.

1930년대 이후 전시상황에 따라 간호인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강의를 대폭 줄이고 실습을 증가시켰다. 법적 규정 이외에 '이에 준하는 학교'에서도 간호부를 배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첨가하여 고등여학교에 소정의 간호과정을 설치하고 이수한 자에게 간호부 자격을 주었다. 간호사 배출의 다원화 때문에 이전의 간호사 수준을 통일하고 향상시켰던 정책에서 후퇴되었으며, 간호의 질 향상및 간호 이미지 구현에 방해요소로 작용하였다.

 

3. 병원간호

일제 강점기의 병원은 관립병원, 공립병원,사립병원으로 구분된다.

1) 관립 대한의원(1907)

구한말의 국립병원으로 합방 후 조선총독부의원으로 개칭되었다. 1928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 동인의원

1906년 대구와 평양에 개설하였고, 추후 자혜의원으로 인계되었다.

3) 철도병원

1907년 용산 동인의원으로 설립하여 1926년 철도병원으로 개칭되었다.

4) 경성의전 부속병원

조선총독부병원 부속의학강습소로 발족하여 1916년 경성의학 전문학교, 1928년 제국대학병원(현 수도육군병원)으로 변경되어 조산사와 간호사 양성 교육기관으로 운영되었다.

5) 적십자병원

1904년 정부의 적십자 국제기구 가입으로 1905년 서문 밖에 대한적십자병원을 설립하였다. 대한적십자사는 1909년 일본적십자와 합병되었고, 병원을 일본적십자 조선본부 병원에 존속시켜 간호사와 조산사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 응급구호 간호인력 양성 및 수료식을 행하였다.

6) 도립병원

본래 관립 도 자혜의원으로 1925년 도립병원으로 변경되었다.

7) 소록도 자혜병원(1917)

첫 관립 나병요양소로 전남 고흥군 내섬에 설립되었다. 1938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개교 및 부속병원이 개설되었다. 여의사 홀(Hall)이 조선여자의학강습소로 시작되어 민간 사립기관이 되었다. 해방 후 수도의과대학, 우석의과대학을 거쳐 현 고려대학교 의학대학 부속병원이 되었다.

 

4. 보건간호

초창기의 보건간호는 1923년 기독교 공중보건회관인 태화여자관에서 시작되었다.

부분적 보건간호와 모자보건간호가 실시되었는데 1924년 로젠버거(Rogenberger)와 한신광 등이 영유아 가정방문 보건 간호를 시작하였다.

1924년 공주 중앙영아원이 한국 최초의 탁아소로 개설되었다. 선교간호사 보딩에 의해 설립되어 1926년 한국 처음으로 우유급식사업과 간호사 양성 사업을 실시하였다.

1929년 '경성연합 아동 복지회'는 세브란스 병원과 동대문 부인병원이 연합하여 설립되었고 진료, 입원치료, 보건상담, 출산 강좌, 가정방문, 이유식 교육, 아기 목욕시키기, 학교 보건 교육, 건강진단, 자모회 조직, 예방접종 등을 실시하였다.

공중보건에 헌신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한신광과 이금전, 이효경, 김정선 등이 있다.

* 일본식 간호와 선교식 간호의 비교

일본식 간호 선교식 간호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의사가 간호사를 관리
간호가 의사의 보조 역할에 치중
진취적이고 전인적인 간호의 성격
질적인 성장보다 양적의 형식적인 간호에 치우침
개별적 간호중심의 수기와 치료에 중점
질병 이외에 생활과 건강교육 등 간호의 질 중시
입원환자를 보호자에게 위탁하고 외래간호 중심 입원환자 간호를 위주로 하는 임상간호 중요시
수업연한은 1년 반에서 3년
입학 수준은(고등보통학교)도 선교계에 비해 낮음
교육 수업연한은 3~4년
입학 수준은 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내지 졸업 이상

 

5. 간호전문직 단체 조직

1) 1908년 재조선간호부회 : 서양인 졸업간호부의 모임

쉴즈가 설립한 한국 최초의 간호사회로 1911년 재조선서양인졸업간호부회로 명칭 변경되었다.

2) 1910년 세브란스병원 간호부회 : 한국인 간호사들의 첫 모임

보구여관과 세브란스병원 출신 한국인 간호사들의 모임이었다.

3) 1923년 조선간호부회 결성 : 조선인 간호사와 서양인 간호사 함께

간호교육의 표준화 및 교과서 출판과 교과서 번역을 하였고 방문간호 및 사회사업을 행하였다. 1925년 조선간호부 회보를 발행하고 ICN 가입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192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ICN 총회에 셰핑, 이효경, 이금전을 파견하였고 1933년 파리회의에서 일본간호부회 산하단체로 가입하였다. 런던국제간호사회에도 참여하였는데 이때는 이정애, 샌달, 로우랜드가 참여하였다.

4) 1924년 조선간호부회 결성 : 한국인 간호사와 조산사

대중을 대상으로 한 보건교육과 구호할동을 하였지만,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은 활발히 하지 못하였다.

 

더보기

요점정리

 

일제강점기의 간호

의사 이외의 보건의료는 평가 절하 및 병원의 조직구조도 의사 위주로 형성

1914년 산파규칙, 간호부규칙 제정 및 공포 :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제정된 간호에 대한 법률

공중보건 간호활동 : 1924년 경성 태화여자관에서 로젠버거가 한신광과 함께 최초의 보건간호 시작

조선간호부회의 조직적 활동

1923년 조선간호부회 결성9이후 대한간호협회의 창립연도가 됨)

1929년 캐나다 몬트리올 ICN 총회 처음 참석(셰핑, 이효경, 이금전)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