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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과 과제

임신중절, 생명권과 자율성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by 하비™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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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개인적인 견해이며, 특정인 혹은 단체를 비방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임신중절은 태아가 생존 능력을 갖추기 이전의 임신 시기에 약물적으로 또는 수술적으로 임신을 종결시키는 시술을 말한다. 이 정의에 대해서는 태아의 생명권, 여성의 자기 결정권 등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신중절에 관한 법적 기준을 형법에서 제시하고 있었다. 형법 제269(낙태)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였으나, 2019411일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받았다. 따라서, 해당 조항에 대한 효력이 전부 상실되었고 20201231일까지 개정해야 하나 지금까지 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모자보건법이라는 이름의 특별법으로 임신중절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모자보건법 제14,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혈족 또는 친족간의 임신,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가 있으면 의사는 인공임신중절을 시술할 수 있다. 이러한 법을 근거로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에서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법적 규정에 따라 윤리적 기준도 만들어지는 상황이다. 의료공동체 건강과 대안에서 발표한 국제산부인과학회 보고서 기반의 비의료적 이유에 의한 인공 임신중절의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권고에서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자발적 동의하는 과정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면,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고 안전한 임신중절이 정당화될 수 있다.”라고 기준을 제시한다. 한국 간호사 윤리강령 해설서에서는 임신중절은 남용되어서는 안 되며, 태아나 모체의 건강과 인간적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간호사는 이러한 절차를 확보하고 준수하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법안이 개정되고 시행령이 선포되었지만, 우리나라의 공식적이고 정확한 윤리적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임상 가이드북 개발 연구 보고서를 읽어보면, 치료 방법이나 수술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은 많으나 윤리적 기준과 권고사항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명확한 윤리적 기준 성립을 위한 계속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윤리적 기준을 성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논의해야 하는데, 이전에 공리주의와 의무론적인 입장에서 임신중절을 살펴보자.

공리주의 입장에서 임신중절을 본다면 호의적이다. 공리주의는 모든 인간 생명을 동일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 어떤 생명이 계속 생존하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결과에 따라 상대적으로 크고 작은 가치를 갖는다. 공리주의의 주장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며 고통을 최소화하고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주장을 임신중절에 적용하면,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이 합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임신중절이 욕구 만족의 극대화를 가져온다면, 임신중절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이미 태어난 사람의 이익에 태아가 고통을 초래한다면 고통을 최소화하고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의무론 입장에서 임신중절은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의무가 있다. 임신중절을 통해 임신을 종결시키는 행위는 태아를 살인하는 것과 같기에 허용되지 않는다. 비록 좋은 의도에서 나온 행동일지라도 살인하지 말라는 의무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칸트의 의무론에서는 인간이 존엄하다라는 의미가 가치를 가진다라는 것과 동등하게 보았다. ,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절대적가치를 가지며 상대적인 가치 비교에서 절대적 우위를 가진다. 이는 태아의 생명에 절대적 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 본인은 20년도 9월 육군 병사(수송 특기)로 입대한 후 223월 동일 병과(수송)의 부사관으로 임관하여 236월에 전역하였다. 나는 생명과 직결된 현장 속에서 나라를 지키고 국가의 안보를 사수하기 위해 일종의 살상 능력을 배우고 함양하며,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전쟁의 잔혹함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더 나아가서는, 실제로 조직 내의 부적응 혹은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하거나 자해하는 병사를 보면서 생명은 그 어느 가치보다도 소중하며 지키고 사수해야 할 가치라는 것을 느꼈다. 이런 입장에서 나는 임신중절의 전면적 허용에 대해 반대한다.

태아는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태아도 성인과 같은 존엄성을 가진 생명체로 보아야 하고 임신중절과 같은 행위를 통해 인공적으로 태아를 모체에서 분리하는 행위는 살인과도 같다. 따라서 태아의 생명권은 성인의 생명권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며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일각에서는 태아는 산모 몸의 일부이기에 여성이 자유롭게 임신중절을 선택할 수 있는 태아에 대한 소유권과 자기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물론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다. 예를 들면, 우리 몸에 있는 장기에 대해서 소유권을 가진다. 따라서 이를 다른 사람을 위해 기증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사고파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태아는 장기와는 거리가 멀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장기는 향후 존엄성을 가진 생명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없지만, 태아는 존엄성을 가진 생명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태아에게 소유권을 갖는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우리의 소유권은 중요하고 강하지만, 이 권리가 남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 정당화될 만큼 중요하고 강한 권리는 아니다. 자기 결정권. , 자율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며, 타인의 가치와 직결되는 생명권과 충돌할 경우 생명권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만약 소유권과 관련된 논리가 채택된다면, 누군가 금은방의 금을 삼키고 내 몸 안에 있기에 내게 소유권이 있다고 주장하여도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그리고 다 큰 자식에 대해서 부모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자식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 또한 제지할 수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출산 전 검사에서 태아가 기형이란 결과가 나오면 임신중절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 본인은 이 경우에 임신중절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보통의 사람은 기형아 즉, 결함이 있는 상태로 태어난다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부모의 의견이자 편협한 선입견이다. 인간 삶에 대한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생활 방식이나 정신적 건강과 같이 후천적인 요인이 더 많다. 또 태어난 아이의 삶이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 짓고 생존의 기회를 빼앗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 또한 자신의 결함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현재 결함과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며 살아가는 이들의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와도 같다.

나는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는 예비 의료인이기도 하다. 예비 의료인의 입장에서도 임신중절의 전면적 허용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 간호사 윤리강령 해설서에서 임신중절은 남용되어서는 안 되며라고 제시하고 있다. 나는 한국의 예비 간호사로서 위 윤리강령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책임이 있다.

임신중절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태아는 세포에 불과하며 인간이 아니다라며 생명권이 없기에 존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태아는 생명권이 없는 것일까? 보통의 의사들은 수정 후 14일을 기준으로 원시선(포배를 형성하는 구조)이 발생한 순간 이후부터 인간의 생명과 동등한 입장이다라는 태도를 가진다. 이는 의사뿐만 아니라 헌법 재판소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2008731일 헌법재판소에서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라고 판결하였다. 따라서 태아는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고, 국가는 헌법 제10(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한다. 이러한 법적 근거에 따라 수정 14일 이전의 배아는 세포이지만, 14일 이후의 배아는 태아이며 성인과 동등한 생명권을 갖는다. 따라서 간호사는 태아가 생명권을 가진 존재로 보며 존엄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더 나아가서는 태아 또한 간호 대상자이며, 간호사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간호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봄이라는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태아와 산모가 위험할 때 산모를 살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법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법령을 보면, 산모가 임신을 계속하는데 보건 의학적 이유로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또는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임신중절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간호사에게 산모와 태아는 모두 간호 대상자이다.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건강과 안녕을 증진할 사명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결코 산모가 태아보다 더 큰 가치의 생명권을 가진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생명 중에 더 중요하고 큰 가치를 가진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둘 중 더 생존율이 높은태아 혹은 산모를 살리는 것이다. 만일, 태아가 산모보다 살 확률이 더 높다면, 태아를 살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호사에게 있어서 생명권은 존중해야 하고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가치이기에 임신중절의 전면적 허용에 있어서 반대한다.

 

의학 학술지 Lancet에 익명의 독자가 아래와 같이 투고했다.

인공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은 없다. 아이를 원하거나 피임을 바랄 뿐이다. No woman wants an abortion. Either she wants a child or she wishes to avoid pregnancy.”

이 세상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가볍게 생각하고 태아가 가진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하나의 태아였고, ‘출산이라는 고귀하고 숭고한 과정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성장했다. 이런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은 앞으로 태어날 생명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임신중절에 대한 법적ㆍ윤리적 논의는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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